걸어온길

01. 학력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도시지방행정학 석사
  • 명지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 아산고등학교 졸업
  • 아산중학교 졸업
  • 온양초등학교 졸업

02. 경력

  • 現) 충남희망포럼 공동대표
  • 現) 온아연합회(축사모), 88자원봉사대, JC특우회원
  • 前) 제17대 국회의원,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 前)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자문위원
  • 前) 노무현 대통령후보 아산시 선거대책위원장
  • 前)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 동우회 회장
  • 前) 미국 UCLA 대학교 객원연구원

03. My Story

- 지게지고 밭일하며 유년시절 보내

복기왕 아산시장은 1968년 4월 아산군 온양읍 법곡리에서 농민인 부친 복광채,모친 이영희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복기왕 아산시장은 “10명이나 되는 대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부친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땅 하나만 바라보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한다. 유년시절에 그는 논 10마지기를 일궈 생기는 약간의 생활비로 가난을 벗어나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집안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지게를 지고 밭일에 나서기도 했다고. 그래도 집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며 지금도 가난했던 기억보다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이 유년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 대중을 열광시키던 소년연사

이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신을 힘있게 밝히는 소년연사자에게 열광하기도 했다며, 현재 강한 뚝심의 뿌리는 그 시절 웅변을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 같다는그의 회고다. 중학교 졸업 후 복기왕 아산시장은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동창들이 선진도시 명문고로 유학을 떠나는 것과는 반대로 지역 소재 학교인 아산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던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수반 제도를 통해 충분한 학업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학교 측의 설명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산고등학교가 내세운 ‘우리 지역의 인재를 우리 지역에서 육성하자 ’라는 슬로건이 지금도 교육문제에 상당한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복기왕 아산시장의 신념과 일치했다고. 아산 토박이 로서 아산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복기왕 아산시장은 설명한다.

-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지난 86년, 그는 명지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고향에서 ‘애향단’ 활동과 ‘청년 4-H’ 활동을 해왔던 경험은 대학 입학 후 ‘농어민 후생 연구회’ 가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린시절 줄곧 논밭에서 생활해온 그에게는 우리 농촌의 문제는 곧 가족과 고향의 문제와 마찬가지였다. 대학 동아리 활동으로 농촌 현실과 사회문제를 심도 있게 공부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보다 넓어진 학문의 길에서 그는 광주민중항쟁을 비롯한 왜곡된 현대사의 진실을 목격하고 분노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물결에 동참했다. 아울러 6월 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6·29선언을 이끌어 내고 시대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총학생회장을 맡게 된 4학년 때 그는 사회변혁을 이끄는 주체로 나서 전국 최초로 등록금 인상반대 운동을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남북 청년학생대회에 대표로 참여했던 일은 통일 운동에 기여한 보람된 경험으로 그는 회고했다. 복기왕 아산시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이 시대에 필요한 ‘민주적 리더십’을 온 몸으로 배웠던 시기였다. 나 하나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해 변혁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소중한 친구를 멀리 보내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을 토로했다. “지난 89년 이땅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분신한 중학교 친구인 남태현 열사, 91년 시위 도중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고 산화한 대학 후배 강경대 열사에 대한 아픔이 그 것”이라며 그들이 목놓아 외쳤던 정의를 향한 목소리들은 언제나 자신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쉴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후 92년, 5년간 교제해 오던 동갑내기 박현우씨와 결혼, 가정을 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새 생활을 출발했다.

- 사업가에서 개혁연대 핵심 일원으로

서울에서 코리아제록스에 입사 5년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복기왕 아산시장은 농산물 유통 분야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했다. 찬 새벽 공기를 가르고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나가 꼼꼼히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대학 시절 가졌던 사회에 대한 관심, 연대의 끈을 놓지 않던 그는 낮이면 청년단체 사무실에 나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정을 비우면서까지 복기왕 아산시장의 유세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줬던 열린우리당 임종석(서울 성동구 을) 국회의원 당선자를 비롯해 이인영, 우상호 선배들과 함께 현실 정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 사회를 움직일 대안세력에게 과연 시대적 과제를 풀 식견과 전문성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복기왕 아산시장은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의 운영위원직을 맡으면서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지닌 젊고 개혁적인 386세대 정치인들을 만나 사회개혁이라는 큰 뜻으로 의기투합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청년 단체, 전대협 동우회에서는 회장으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의 힘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한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난 2001년에는 ‘정치 개혁과 국민 통합을 위한 개혁연대(대표 문재인, 문성근)’ 결성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그 한 축을 담당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서서 정치 개혁과 정당 개혁,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고 믿었다”는 복기왕 아산시장. 국민 경선이 시작될 무렵에는 ‘2030 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청년 세대의 정치 참여와 정당 개혁을 촉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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