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복지센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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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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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지역특성

  • 위 치

    북 단 : 염치읍,
    남 단 : 도고면,송악면(일부)
    동 단 : 온양1동, 온양4동, 온양5동
    서 단 : 선장면

  • 지형상 여건

    저산성 구릉지로 곡교천, 삽교천등의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면의 북,서, 동쪽은 경지정리가 잘 된 평야지대 남쪽은 황산이 있는 전작 및 과수 지대 임.

  • 산업상 여건

    1. 농 업
    수장리, 남성1리, 신달리, 가덕리, 신곡리, 가내리는 곡교천과 삽교천의 영향으로 미질이 뛰어난 청결미를 생산하고 있으며 남성2.3리, 황산리, 궁화리는 사과, 배, 포도등의 과수 지역이고 행목리, 창암리 지역은 특작이 발달하여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오목리와 읍내리지역은 상업과 농업이 공존하는 지역임


    2. 공 업
    잘 발달된 도로망과 인접지역인 인주면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영향으로 자동차 부품, 제약, 전자, 제과, 복권카드, 생수등 다양한 종류의 기업체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 유망, 우량 기업체가 많아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


    3. 상 업
    순천향 대학교가 소재하는 읍내2리 지역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 숙박업 및 서비스업이 발달하였으며 오목1리 면소재지에는 면사무소, 파출소, 농협등과 같은 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이 발달하였음


  • 교육여건

    지방의 명문 종합대학인 순천향대학교와 미래 기술인재를 양성하는 한국폴리텍Ⅳ대학 아산캠퍼스가이 자리하고 있어 지방의 새로운 교육메카로 급부상 하고 있음

  • 방문할 만한 곳

    1. 인취사(仁翠寺)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790번길 20-52)
    건립시기 : 고려시대로 추정 사찰현황 : 극락전, 요사채, 우물, 삼층석탑 2기, 종각건물, 삼존불 행사:매년 8월 초순에 온양 연꽃축제가 열리며 승무, 백련시사회 연향차 시음등의 행사가 열림


    2. 신창향교(新昌鄕校) (아산시 신창면 서부남로840번길 29, 향교말)
    건립시기 : 조선 태종조 이후로 추정 유적현황 : 대성전(충남 문화재 제225호), 대삼문, 명륜당, 동.서양재 홍전문 행 사 : 대성전에 모신 五聖과 宋朝二縣 및 우리나라 18縣의 위패 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上丁日에 석전을 봉행.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한 어린이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음 문화재 지정 : 충청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


    3. 학성산성(鶴城山城) (아산시 신창면 읍내2리 학성산 내)
    건축시기 : 미상 유적현황 : 남벽(높이 7.5m), 북벽(4m), 동벽(높이 4.5m), 부대시설(문지와 건물지)

현황(2022년 8월말)

  • 면적 : 39.88㎢ (아산시의 7.3%)
  • 인구수 : 9,359세대 27,273명
  • 법정리 : 오목리,읍내리,창암리,황산리,행목리,수장리,신달리,남성리,궁화리,가덕리,신곡리,가내리
  • 행정구역 : 법정리(12),행정리(46),반(204)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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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신창에 대한 자료의 출현은 청동기 시대부터 인데 그 이전 신석기시대의 경우 사람들의 거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기원전 1000~3000년)되며 음식물 채취가 용이한 해안가에서 주로 생활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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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신창면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물유적은 남성리 석관묘와 그곳에서 출토된 세형동검 3점을 비롯한 각종의 청동기, 구슬류, 토기등이며 특히 검파형 동기, 방패형 동기등의 특수한 의기는 매우 주목되는 유물로 이 시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하며 동시에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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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성립 이전) 즉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마한의 세력권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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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기량현에 속하였으며 전란기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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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려초의 대대적인 지방변경에 의하여 신창현이 되었고 현종 9년에는 다른 아산지역과 마찬가지로 천안부에 소속되었다. 공양왕 3년에는 감무관이 파견되었으나 사실상 신창은 고려시대에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으로 일관된 셈이다, 신창현 서쪽 장포에 성을 쌓고 당성 이라 부르면서 서울에로의 조운을 위한 조곡의 수집 및 발선처로 삼았다


1414
(태종14년) 온수군과 신창현의 통합으로 온창으로 명명되기도 하였으나 동 16년에 다시 원래대로 분리되었다
▷ 신창현의 규모
(가) 1789년 호구총수의 자료를 기준: 1941호, 8122구(口)
(나) 세종지리지 : 토지 3064결(논의 비율 1/2)
(다) 여지도서(18세기 중엽) : 3,075결(간전1782, 수전 1,293)
1895
지방제도의 전국 개정 - 홍주부 관할하에 있다가 이듬해 지방제도 재개정으로 충청남도에 소속
191403. 01
지방제도 개편(총독부) - 아산군에 통합되면서 학성면으로 개칭
1917
신창면으로 개명




유래

  • 오목리 : 신창면 면소재지로 오목, 새터, 오사미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래 신창군 북면 지역이었던 것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교리, 오삼리, 시목리, 안정리 그리고 화달리 일부를 병합하고 오삼리와 시목리의 이름을 따서 오목리라 하였다.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1921년 명칭변경으로 신창에 편입되었다.
  • 읍내리 : 신창면의 명산이며 역사가 서려있는 학성산(鶴城山)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지방의 명문종합대학인 순천향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원래는 신창고을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마을명이 유래되었다. 본래 신창군 군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북동, 남산리, 홍문리, 금잔형리, 유기리, 교촌리, 신대리와 대동면의 잉동 일부를 병합하여 읍내리가 되었으며 아산군 학성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읍내리는 3개의 자연부락과 1개의 아파트부락(경희학성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 창암리(昌岩里) : 신창군 대동면의 지역이었던 곳으로 역말과 불거미로 구성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덕리, 부거산리, 명암리. 오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창덕과 명암의 이름을 따서 창암리라 하였으며 아산군 학성면에 편입되었다가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 황산리(黃山里) : 신창군 대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황동, 외황동, 오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황동과 오산의 이름을 따서 황산리라 하였으며 아산군 신창면에 편입되었다가 신창면 황산리가 되었다.
  • 수장리(水長里) : 신창군 소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구포리, 수여리, 수남리, 구평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수여와 장구포의 이름을 따서 수장리라 하였으며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1921년 명칭개정으로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 행목리(杏木里) : 신창군 대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칠목리, 행촌, 잉동 일부를 병합하여 행촌과 칠목의 이름을 따서 행목리라 하였고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명칭 개정으로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자연부락인 행목1, 2리와 아파트 부락(대주아파트)으로 구성되어 있다.
  • 남성리(南城里) : 신창군 소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중구역 폐합에 따라 신성리, 남방리, 방축리의 각 일부와 대동면의 수여리, 구평리, 수남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방과 신성의 이름을 따서 남성리라 명명하게 되었다.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명칭개정으로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남성리는 3개의 자연부락과 8개의 아파트 부락(장미아파트, 샘마을아파트, 신일아파트, 다소미아파트, 성우사원아파트, 코아루아파트, 상아아파트, 한미아파트)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남성리에서는 석관묘 등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어 유구한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
  • 궁화리(宮華里) : 궁골과 조내골로 형성되어 있는 궁화리는 신창군 소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당리, 화산리, 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궁동과 화산의 이름을 따서 궁화리라 명명하였으며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 가덕리(佳德里) : 신창군 북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가야리, 거산리, 덕동, 화산리, 궁동 각 일부와 소동면의 화달리 일부와 아산군 삼서면의 형제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야와 덕동의 이름을 따서 가덕리라 하였다.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가덕의 뜻은 덕을 쌓는다는 의미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 신곡리(新谷里) : 신창군 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 신언리, 기곡리 일부와 대서면의 원내리와 아산군의 삼서면의 신성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리와 기곡의 이름을 따서 신곡리라 하여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명칭개정에 따라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 가내리(佳內里) : 신창면 소동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원동, 언내리, 가리, 용곡리, 기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리와 언내리의 이름을 따서 가내리라 하였고 가리울과 번갯말로 나누어져 있다. 아산군 학성면에 속했다가 신창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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