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안내도
500년 역사의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아산외암마을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 12동을 주축으로 조선시대 신분별 주거공간을 재현하고 있으며, 주거용구류, 부엌살림류, 농기구류, 기타 소품류 등 각종 생활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규모 : 좌석 50석
- 상영시간 : 13분
- 내용 : 외암마을 소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영상자료를 상영하며 관리사무소에 요청하면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반석교(마을 앞 다리) 건너 왼쪽에 있는 물레방아
택호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옛 주인의 관직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안채의 중앙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6칸 대청을 중심으로 동측에 방을 서측에는 마루방, 아래쪽으로 안방이 있으며 이어서 부엌과 작은방을 배치하였다. 안채의 동측 뒤편에 가묘가 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반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측면이 긴 형태로 되어 있다. 안채의 동측에는 대나무 숲이 있으며 그 앞으로 정원과 정자가 있고 작은 연못에 조성되어 있다.
아산외암마을 디딜방아
교수댁은 마을 중앙부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용구(李用龜, 1854 ~ ?)가 경학(經學)으로 천거(薦擧)되어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고 하여 붙은 택호이다. 이용구의 생부는 이장렬이며, 백부인 이정렬에게 출계하였다. 이용구의 아들 이백선의 글씨가 반계와 용추에 있다.
교수댁 역시 외암마을 고택의 특징인 소계류(小溪流)를 이용한 연못과 수석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마련하고 돌담 밖에는 ‘삼신상사상’을 상징한다 할 수 있는 작은 방지를 두었다. 바깥에는 초가지붕으로 된 디딜방아가 남겨졌고 높은 솟을대문의 행랑채가 있다.
이 집은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이용현(1783 ~ 1865)으로부터 유래한다. 이용현은 입향조 이사종의 9세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총관, 경연특진관 등을 지냈다. 이용현의 6세손인 이창선까지 현재의 신창댁에 살았으므로 전에는 이 집을 병사댁이라 불렀다.
신창댁은 병사댁이라 불리던 택호가 바뀐 것이다. 신창댁이라는 택호는 이사종의 12세손인 이세열의 처 보성임씨의 친정이 신창인데서 기인한다. 사랑채가 따로 없는 이 집은 ‘二’자형으로 가운데 3칸의 대청마루를 두고 건넌방 끝 방을 사랑방으로 사용하여 별도의 사랑채를 두지 않았다.
600년 나이에 높이 21m, 둘레 5.5m의 이 짱짱한 老巨樹는 목신제를 지내는 마을의 수호목이다. 느티나무 목신제는 장승제와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의식으로 매년 음력 1월 14일 (사)외암민속마을보존회 주관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기원 종부가 살고 있는 종가의 택호는 ‘풍덕댁’이다. 7대조가 황해도 풍덕군 군수로 지냈던 것에서 풍덕이라는 택호가 유래하였다. 과거 황해도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예안 이씨 집성촌은 14대조가 마을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터에 자리 잡게 됐다.
참판댁 앞에 있는 옛모습 그대로의 연자방아
이 집의 택호인 참봉댁은 이사종의 12세손인 이중렬(1859~1891)과 그의 아들 이용후(1886~1955) 부자가 참봉 벼슬을 지낸 연유로 얻은 택호이다.
이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一'자 모양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2열로 평행 배열된 '二'자 집이다. 약 6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안채와 사랑채를 배치하였는데, 정면 길이는 같고 측면의 폭은 서로 다르게 하였다.
마을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가옥으로 조선시대 규장각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고종으로 부터 하사받아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외암 이간(李柬) 선생의 종손이 살고 있어 종손댁이라 불린다. 안채는 '┌' 모양으로 중앙에 2칸의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있다. 오른쪽의 건넌방 앞에는 들마루를 내었고, 들마루 밑에 온돌용 아궁이가 있다. 안채 남쪽에 'ㅣ' 모양의 문간채를 배치하였으며, 대문 앞에 외암 사당(祠堂)이 있다.
건축형태를 갖춘 외암마을의 의례·신앙적인 시설로는 외암 이간선생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거의 끝 부분에 위치해 의례적 공간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이 밖에 각 주택에 따라 직계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동족마을이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분파 되어 직계 선조를 모시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동족마을의 공동시설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산 외암마을 부근에 자리 잡은 저잣거리는 새로운 먹거리 문화와 놀이문화,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의 옛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문화적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며, 가족, 연인, 단체 등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요소가 곳곳에 베어 있다.